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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 시즌 2
이번 해 1월에 수술을 받은 수, 운동을 약 4개월 간 멈춘 채로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피지컬 100: 시즌 2″의 트레일러를 접하게 되었다. 트레일러를 보다가 “잠깐, 저기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 저거 장군이 아닌가?”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진짜 이장군이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며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았다. 장군이는 어릴 때부터 운동 실력이 뛰어나고 몸매도 좋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아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몇 번 교류하고 같이 성당 수련회를 간 기억이 마지막이다. 그 후 친구의 친구를 통해 그가 카바디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에서 다시 보니, 어릴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고, 삶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아 기쁘고 앞날이 더욱 빛나길 응원한다!
그리고 “피지컬 100: 시즌 2″는 4화까지 본 상태이며, 팀장으로 활약하는 장군이의 4화 경기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한편으로 이 프로그램이 사전에 연출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진짜일까? 이미 우승자가 시작부터 정해져 있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이 나의 내면에 운동에 대한 열정을 다시한번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만족한다.
이장군 나무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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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브레멘에서 오랜 생활을 하며 나만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Hastedter Park am Weserwehr
이곳은 내가 주변에 살았을 때 자주 찾았던 베저강 근처의 공원이다. 때로는 마음이 복잡할 때 공원에 앉아 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물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갖곤 했다.
구글 지도 링크
베르더 호수 (Werdersee)
브레멘의 또 다른 명소는 바로 베르더 호수이다. 이곳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길고 아름다운 호수로, 여름철 친구들과 모여서 놀기 좋다. 브레멘의 평평한 지형 특성상 이곳에서는 달리기, 산책, 보드, 롤러스케이트 등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곳의 매력은 바로 물놀이를 즐기면서 동시에 바비큐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에서 직접 그릴을 즐길 수 있는 도시는 독일 내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이곳은 그만큼 특별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한 번은 밤하늘에 별똥별이 쏙아질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침낭과 절연 매트를 챙겨 이 호수가에 누워 밤새 별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있다.
유튜브 링크
구글 지도 링크
브레멘의 여름을 빛내는 축제: 브레미날레 (Breminale)
독을 브레멘에서는 매년 7월 아름다운 베저 강변을 배경으로 4일간의 대규모 야외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는 다양한 음악 장르에 걸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며, 로컬 밴드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까지 참여한다. 그리고 축제기간동안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여러 문화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입장료가 없어, 음식을 구매할 비용만 준비하면 된다. 나 역시 매년 7월이 되면 축제를 구경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브레멘으로 놀러간다.
학생들의 축제: Sommerfest Vorstrasse ft. Spittaler str.
브레멘에서 브레미날레 다음으로 큰 입장료가 없는 이 축제는 매년 6월 브레멘 대학교 인근의 기숙사 지역 Vorstrasse 그리고 Spittalerstrasse 에서 3일간 열린다. 이 행사에서도 다양한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비롯해 많은 문화 이벤트를 즐길 수 있으며, 음식비만 준비하면 된다. 이 축제를 주로 대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기숙사에 사는 많은 국제 학생들도 함께하기 때문에 다양성이 풍부하다. 나 역시 이 기숙사에 거주할 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축제를 도왔다.
링크
브레멘 시립도서관
독일을 여행할 때마다 나는 반드시 그 도시의 시립도서관을 방문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도서관 중 브레멘 시립도서관은 최고이다. 학생에게 도서관 이용이 무료이고 학생이 아니여도 연회비가 다른 도시에 비해 저렴하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매우 다양해서 학생 시절에 나도 이 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다. 도서관 측에서 주최하는 무료 커뮤니티 행사나 작품 전시회 등 이 정기적으로 열려, 관람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고 공부하기에도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독일어를 공부하던 시기에는 이곳에서 만화책과 영화를 많이 빌려 보았다. 보드게임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구경하고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곤 했다.
도서관링크
브레멘 먹거리 롤로(Rollo)
브레멘에서 놓칠 수 없는 인기 간식 중 하나인 롤로는 Fladenbrot속에 다양한 재료와 소스를 넣어 돌돌 말아 오븐에서 구워 낸 따뜻한 음식이다. 브레멘 시내의 Siewall역 근처에는 브레멘 롤로 원조가게가 있으며 아주 맛있다. 가격도 저렴해 강가로 놀러 갈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롤러를 사서 강가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얘기하며 같이 먹었다. 다른 독일 지역에서는 롤러를 아직까지 본적이 없기 때문에 브레멘에 방문한다면 반드시 맛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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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거의 9년째 살면서, 처음으로 베를린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베를린 여행 전, 주변 친구들로부터 받은 유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베를린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할 명소와 활동들을 선별해 보았다. 이 여정은 하루짜리 교통 패스, 점심과 저녁 식사비, 그리고 박물관 입장료(박물관 방문을 원하는 경우)만 포함되어 있는 매우 경제적인 여행이다.
투어는 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 (Breitscheidplatz, 10789 Berlin)에서 시작되므로, 오전 10시까지 해당 교회로 향해야 한다.
Gedächtniskirche (신교도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이 교회는 1891년부터 1895년 사이에, 당시의 독일 황제 카이저 빌헬름 (Kaiser-Wilhelm) 2세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원래 건물의 일부만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반쯤 무너진 듯한 교회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키며 평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Motel One은 방문객들이 건물 최상층(주변에서 제일 높음) 으로 올라가 바에서 음료를 즐기며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Siegessäule (베를린 전승기념탑)
교회를 둘러본 후, 다시 100번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면 Siegessäule, 즉 베를린 전승기념탑에 도착한다. 이 탑은 약 67m 의 높이를 자랑하며, 정상에는 승리의 여신을 상징하는 화려한 금빛 빅토리아 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여신상은 손에 월계관과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승리와 평화의 의미를 함께 전달한다.
방문객들은 4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탑 내부의 작은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고, 계단을 통해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전망대에서는 베를린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포토 스팟이다.
참고로, 이 기념물이 위치한 원형 교차로는 신호등이 없어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면 지하터널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으니, 이 지하 통로를 통해 안전하게 건너가자!
Schloss Bellevue (벨뷔 궁)
승리의 기둥을 둘러본 후, 100번 버스를 다시 타고 한 정거장을 이동하면 Schloss Bellevue에 도착합니다. 이 곳은 독일 대통령의 공식 관저로, 1786년에 건축가 마이클 필립 부우만(Michael Philipp Boumann)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원래는 왕족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도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다가 전후에 재건되었고, 1959년부터는 독일 대통령의 관저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Haus der Kulturen der Welt (세계문화의 집)
Schloss Bellevue를 구경한 후, 인근 공원을 따라 Haus der Kulturen der Welt, 즉 세계 문화의 집으로 향했다. 이 건물은 미국이 베를린에 선물한 것으로, 원래는 1957년 인터바우 전시회를 위해 건축된 미국 회관이었다고 한다. 건축가 휴 스텁빈스(Hugh Stubbins)가 설계한 이 건물은 현대 건축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특히 유니크한 지붕 구조로 유명하다. 다양한 전시, 공연, 회의 등이 항상 열리는 이 곳은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중심지입니다. 많이 걸었다면, 여기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화장실 사용이 무료이니, 급하게 화장실을 찾는 이들에게도 편리한 장소이다.
Brandenburger Tor (브란덴부르크 토어)
커피한잔을 즐긴후 조금 더 걸어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브란덴부르크 토어로 향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이 건축물은 원래 도시의 관문 중 하나였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높이가 약 26미터에 다섯 개의 통로로 구성되어있으며 중앙의 통로는 귀족과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토어의 정상에는 평화의 여신을 나르는 승리의 여신을 상징하는 Quadriga라는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조각상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나중에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브란덴부르크 토어는 베를린 장벽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20세기의 자유와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Holocaust Mahnmal (홀로코스트 추모관)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에는 “학살당한 유럽의 유대인 기념비(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기념물은 나치 독일에 의해 대량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기념물은 약 19,000m²의 부지 위에 2,711개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블록들은 서로 다른 높이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배열은 방문객들이 기념물 사이를 거닐며 경험하는 혼란과 분리감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고통과 혼란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기념물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Unter den Linden (운터덴린덴)
Unter den Linden은 독일 베를린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유명한 대로로, 린덴 나무로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거리는 17세기 초 프로이센 왕가의 여름 궁전과 베를린 시티 센터를 연결하는 목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거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Humboldt Universität), 구 도서관 알테스 팔라이 (Altes Palais) 등 유명 관광지들로 이어지지만, 저는 겨울에 베를린을 여행 중이라 100번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이 거리를 눈으로만 감상했다. 린덴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이 거리를 걷는다면, 겨울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Schloßbrücke
Schloßbrücke는 Unter den Linden 대로에서 박물관 섬 쪽으로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슈프레(Spree)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이 신고전주의 양식의 다리는 1821년부터 1824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다리 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조각상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Altes Museum (구 박물관)
Museum Island에 자리 잡은 Altes Museum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역사적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로,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방문하지 못했지만, 다음 번 베를린 방문 시 꼭 들러보고 싶다.
Berliner Dom (베를리너 돔)
Museum Island에 위치한 베를린 대성당도 놓칠 수 없는 명소이다. 1905년에 완공된 이 신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가능하다면 내부를 직접 탐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은 베를린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소다.
Berliner schloss (베를린 성)
Museum Island에 위치한 베를린 은 현재 Humboldt Forum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곳은 수세기에 걸쳐 프로이센 왕가와 독일 황제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15세기에 처음 건설된 이 성은 2차 세계대전 중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전후 동독 정부에 의해 1950년대에 철거되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Humboldt Forum이 궁전의 위치에 재건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궁전의 외관을 재현하면서 현대적 요소를 결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다양한 박물관, 도서관, 전시회, 토론 등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므로, 방문하여 직접 구경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화장실 이용도 가능하다.
Alexanderplatz (알렉산더 광장)
마지막 100번 버스의 종점인 이곳은 유명한 공공 광장이다. 이 광장의 이름은 1805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 광장근처에는 또 유명한 베를린 TV타워가 있다. 이타워는 높이가 약 368미터이다. 시간이 나면 한번 올라가서 베를린 전경을 구경해도 좋다.
Alexanderplatz는 100번 버스의 종점이며,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 광장 중 하나이다. 이 광장은 1805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광장 근처에는 유명한 베를린 TV 타워가 위치해 있으며, 이 타워의 높이는 약 368미터이다. 타워에 올라가면 베를린 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East Side Galerie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남은 가장 긴 구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갤러리 중 하나이다. 1990년, 독일 통일 직후에 설립된 이 갤러리는 약 1.3km에 달하며, 전 세계 예술가들이 자유, 평화, 통일의 메시지를 담아 그린 100개가 넘는 벽화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드미트리 브루크(Dmitri Vrubel)가 그린 “내 형제를 키스하라 (My God, Help Me to Survive This Deadly Love)”입니다. 이 벽화는 소련의 레오니다스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사이의 유명한 입맞춤을 묘사하고 있으며,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긴장과 정치적 상징주의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앞은 항상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며, 베를린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포토 스팟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인생샷을 남겼다.
Mauerpark (마우어 파크)
Mauerpark, 독일어로 ‘장벽 공원’을 의미한다. 이 공간은, 한때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분단되었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경계선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장벽이 철거된 이후, 이곳은 시민들의 여가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베를린에 일요일에 머무른다면 반드시 Mauerpark을 방문하도록 하자!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활기찬 벼룩시장에서는 다양한 빈티지 의류 (베를린 하면 빈티지), 수공예품, 중고 물품 등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더불어, 다채로운 라이브 공연들이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도 대규모 야외 카라오케 이벤트는 특히나 유명하다.
Gemüse Kebab
베를린을 방문했다면 케밥을 꼭 맛보자! 특히, Gemüse Kebab은 전통적인 케밥에 신선한 다양한 채소와 샐러드를 추가해 더욱 건강한 맛을 선사합니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케밥을 맛보았지만, 베를린에서 경험한 케밥의 맛이 가장 맛있었다.
추천: Rüyam Gemüse Kebab
Currywurst (카레 소시지, 커리부르스)
베를린의 또 다른 먹을거리는 바로 Currywurst다. 이 요리는 1949년 베를린의 한 여성이 미군 부대로부터 얻은 커리 가루와 케첩을 사용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독일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베를린에서는 커리소시지뿐만 아니라 껍질 없는 커리소시지 (Currywurst ohne Haut)도 맛볼 수 있는데, 껍질 없는 커리소시지는 베를린에서만 특별하게 즐길 수 있으니 체험을 추천한다. 보통의 커리소시지보다 훨씬 부드럽다, 개인적으로 맛있었다.
추천: Curry 61, Knonnopke’s Imbi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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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브레멘 (Bremen)에서 어학연수 그리고 학생 친화적 환경
1 년동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독일어 공부를 했으며 비자가 끝나갈때쯤 브레멘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예비학생 거주증 (비자)을 받았다. 이 예비학생 거주증이 독일 다른 도시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브레멘 대학에서는 우니 아시스트 (uni assist)를 통해 지원한 사람중에 학교 입학 요건을 충족하지만 언어 성적이 부족한 경우, 어학 공부를 위한 2년 간의 체류 허가 받는다.
개인적으로, 브레멘은 학생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우선 기본 생활비가 저렴하고, 체류 허가증 발급 절차가 간단하다. 다른 독일 도시들이 학생들한테 대부분1년 아니면 2년치 생활비가 들어있는 슈페어콘토Sperrkonto를 요구하는 반면, 브레멘은 슈페어콘토가 필요 없다. 나는 정식학생일때 통장에 4000유로 정도만 있었어도 그냥 24개월치 체류허가증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 후 일자리를 찾으면 그냥 5년짜리 체류허가증이나 여권 만기일까지 체류허가증을 받는다. 체류허가증도 대략 한 달 내에 발급받는다.
브레멘의 환영 수당 (Begrüßungsgeld)
브레멘에서는 ‘환영수당이라는 (Begrüßungsgeld)’ 이라는 특별한 제도가 있으니 꼭 신청하자. 브레멘에 새로 공부하러 오는 학샐들 그리고 브레멘에 새로 이사온와서 12개월 이상 거주하는 신규 거주자는 이 혜택을 신청 할 수 있다. 자세한 신청방법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류를 작성한 후, 대학 내 시청에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https://www.uni-bremen.de/bsu/begruessungsgeld
Ökumenisches Wohnheim 과 in der Wisch 아파트: 합리적 거주 옵션
브레멘에는 “ökumenisches wohnheim” 이라는 기독교 교회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다. 이 기숙사는 72개의 방을 가지고 있으며 Vahrerstr. 249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의 방들은 다소 작으며, 화장실은 4명에서 공유하고, 부엍과 샤워실은 약 12명이 함께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감안해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과 교류하며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독일로 오기 전이나 브레멘에 급하게 이사를 올 때 이곳에 방이 있는지 한번 문의 해 보자.
https://www.kirche-bremen.de/institution/bremer-oekumenisches-wohnheim-ev/
또한 브레멘의 “in der Wisch”에도 아파트가 있으며, 이곳에 문의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방을 찾을 수 있다. 가격은 학생 기숙사에 비해 조금 높을 수 있지만,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에 시설도 만족스러운 수준 원룸을 구할 수 있다.
https://www.appartement-bremen.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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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에서의 새 출발
저는 꿈을 품고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여, 2015년 7월 1일 독일의 브레멘 도시로 향했습니다. 다행히도, 2015년은 1유로가 약 1250원이었던 저렴한 환율 시기였죠. 독일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많은 유로를 가지고 와서 은행 계좌를 개설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독일 생활의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슈퍼마켓에서 장보기, 인터넷 신청, 휴대폰 개통 등 모든 것이 힘들었죠. 또한, 그 당시 제가 살던 곳의 샤워실이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집에서 샤워를 못 했고, 매주 새로운 피트니스 스튜디오를 찾아 다니며 샤워를 해결했습니다.
어학원에서의 도전과 성장
독일 입국 약 한 달 후, A2 레벨의 독일어 어학원에 등록했습니다. A2 레벨이다 보니 어학원의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학업이 주된 목표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C1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B2 레벨에 도달하자, 어학 공부와 외국 생활의 피로감이 쌓여 전반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말하기가 많이 어려웠고, 종교는 없었지만 큰 교회를 찾아 주말마다 예배를 듣고 독일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B2 과정이 끝나고 TestDaF 시험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해, DSH 시험을 치르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괴팅겐으로 이사했습니다.
괴팅겐(Göttingen)에서의 다채로운 WG 생활과 어학 성취
괴팅겐(Göttingen)에서는 5인짜리 WG(공동 주거)에서 생활했는데, 두 명의 독일 여성(레나 Rena와 수지 Susanne), 한 명의 카자흐스탄 여성(안나 Anna) 그리고 독일 남성(토븐 Toben)과 함께 살았습니다. 여기서 C1 어학 공부를 재개하고 TestDaf 및 DSH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집세는 인터넷, 전기, 수도비를 모두 포함해 180유로였고, 히피성향의 친구들이 Foodsharing을 통해 자주 버려질 뻔한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기에, 월 400유로로도 풍족하게 생활했습니다. 괴팅겐에서의 생활은 독일 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함께 살던 친구들과 청소 문제로 싸운 적도 있었지만, 좋은 기억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매주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요리를 같이 하고, 운동을 하러 가거나 주말에는 함께 하우스파티를 즐겼습니다. 심지어 우리 집에서도 하우스파티를 열어 여러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 당시 함께 살던 친구들과는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가끔 만나고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독일인들과 함께 살고 어울리던 그 시기에 제 독일어 능력은 급속도로 향상되어 모든 어려운 시험들을 높은 성적으로 쉽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 브레멘으로 돌아와 제가 하고 싶었던 지구과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괴팅겐에서 산책
토븐과 드라이 아이스로 장난
하우스 파티
가끔 다시 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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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륀콜 (Grünkohl)
오늘은 독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그륀콜 (Grünkohl)’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개 독일 음식하면 소세지, 슈바인 학센 (Schweinhaxe), 슈니첼 (Schnitzel) 같은 음식들이 떠오르지만, 나는 겨울에 북부에서 많이 먹는 그륀콜 (Grünkohl)을 특별히 좋아한다.
그륀콜 (Grünkohl)은 독일 북부에서 특히 인기 있는 전통 채소로, 영어로는 ‘kale’이라고 불린다. 이 채소는 추운 계절에 주로 소비되며, 중세 시대부터 독일에서 재배되고 소비되어 왔다.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케일 (kale)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중요한 식품 자원이었다. 특히 해안 지역에서 겨울철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그륀콜 (Grünkohl) 시즌은 겨울철 첫 서리가 내린 후부터 시작된다. 서리가 내린 후에는 케일의 전분이 자연스럽게 설탕으로 변환되어 맛이 더 달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륀콜 (Grünkohl)을 먹으면 마치 입에서 살살 녹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그륀콜을 주문하면,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푹 끓인 부드러운 케일 (kale)과 소금에 절여 훈제한 돼지고기 등심, 즉 ‘카슬러 (Kassler)’와 소시지, 그리고 삶은 감자나 매시드 포테이토가 함께 나온다.
그륀콜 (Grünkohl)하면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인 브레멘 (Bremen)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그륀콜 (Grünkohl)을 카슬러 (Kassler)와 ‘핑켈 (Pinkel)’이라는 특별한 소시지와 함께 먹는데, 핑켈은 소시지에 곡물을 추가로 넣어 독특한 질감과 맛을 주기때문이다.
이 맛있는 음식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독일을 방문할 때 대부분 이 음식을 접할 기회가 적은 봄, 여름, 가을에 오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나 겨울에 독일에 오면 생소할 수 있는 그륀콜과 함께 맥주 한 잔 꼭 도전해보자. 3년뒤 독일을 떠나고 나면 가장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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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달리기: 유재석씨의 여행에대한 나의 생각
최근 독일에서 수술을 받고 병가를 내 쉬는 동안, 우연히 세계여행을 다룬 유튜브 채널 하나를 발견했다. ‘내 이름은 유재석 mynameyjs’라는 채널이었는데, 링크는 이거다: https://www.youtube.com/@mynameyjs/featured. 유재석이라는 분이 롯데홈쇼핑에서 MD로 일하시다가, 4년간 모은 돈과 은행 대출을 합해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나셨다. 나도 달리기를 하는 사람으로써 그분이 고프로를 들고 풀 마라톤을 뛰시는데 4시간 안에 들어오시는 걸 보고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나도 다른 나라에서 마라톤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널 내용은 백패커로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숙소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현지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문화교류를 하며 여행하는 이야기였다. 그분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수록, 경험 쌓일수록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뚝뚝해지는 것 같았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가끔씩 겪는 안 좋은 경험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상 속 유재석 씨가 사람들과 웃으며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모습, 인종, 국적 상관없이 어울리며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와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웃을 수 있는 그분이 부러웠다. 분명 혼자서 오랫동안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일이 쉬운일이 아닐텐데… ‘힘들 때 웃는 자가 프로’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도 예전에는 호스텔에서 여행객들과 얘기하고 교류하는 게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여행해도 호텔을 예약하게 되었다.
이분의 영상을 보면서, 나는 왜 해외에 나와서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나도 다시 배낭 하나 매고 떠나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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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어: 혼자서 시작한 일주일간의 여정
Knorrhütte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5시경 베를린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며 걷다가, 간단히 식사하고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을 지났다. 알프스의 높은 국경을 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도중에 독일 오스나브뤼크 (Osnabrück) 출신의 여성과 합류하여 함께 걷게 되었고, 그녀가 혼자 이 험한 산을 넘어온 것에 감탄했다. 어느 정도 같이 걸은 후,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혼자서 Coburger Hütte를 향해 걸었다.
길 찾는 방법을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었다. 독일 슈퍼마켓에서 사온 큰 말린 육포 같은 고기를 씹으며 걷던 중 해발 1657m에 위치한 Seebensee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운 경관에 빠져 잠시 쉬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나는 거기서 자연이 주는 치유의 순간을 느꼈다. 이제 Coburger Hütte까지 남은 300m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했다. 호수 위부터 날씨가 험난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예상대로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몰아치며, 알프스 등반 시 급격한 날씨 변화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지막 100m를 올라갈 때 발목에 통증을 느껴 Coburger Hütte에 도착하자마자 쉬기로 결정했다. 해발 1917m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해보니, 바로 옆에는 아름다운 Drachensee가 있었다. 8명이 사용할 수 있는 방에 나를 포함해 독일 Hannover에서 온 대학생 3명과 함께 묵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며 주변을 구경했다. 식사로는 주로 knödel suppe (뇨켈 수프)를 먹었는데, 이것은 오스트리아 전통 수프로, 감자빵 같은 것이 들어가 매우 맛있었다. 나쁜 날씨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이틀 더 머물렀지만, 날씨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더 높이 올라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나는 금전적 여유도 없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죽으면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올라갔다.
사진과 영상에서 본 것처럼 날씨가 정말 흐렸고, 1미터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비바람이 심했다. 가야 하는 길은 사진에서 보이듯 돌 위에 작은 빨간색과 흰색 페인트로 표시돼 있었다. 만약 돌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면 나는 그저 다른 곳으로 걸어 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Grünsteinscharte라는 산봉우리를 향해 나아갔고, 험난한 날씨와 가파른 길에 거의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산봉우리에 도착했을 때 천둥 번개가 치는 가운데 구름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벼락 맞거나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무서웠고 이때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Dormitz로 가는 길은 오로지 내리막길뿐이었다. 알프스에서는 모두 등산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데, 나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이 왔다가, 가파른 돌길을 내려갈 때 무릎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험한 산을 올라갈 때는 내려갈 때 무릎에 들어가는 하중을 분산시켜줄 수 있는 지팡이를 꼭 챙겨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옷을 입었지만 험한 비바람 속에서 핸드폰은 물을 먹었고, 이제부터는 가지고 있던 지도에만 의존해서 걸어갔다.Dormitz에서 하루를 간단히 보내고, 작동하지 않는 핸드폰 때문에 Imst로 빠르게 출발했다. Imst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는데, 인기 있는 레저스포츠 도시라 자리가 거의 없었다. Romedihof라는 백패커 호스텔을 찾았고,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았다. 무릎이 많이 아파서 2일 정도 머물며 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릎 약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숙소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과 같이 숙소정원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Imst는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여기서 새 핸드폰도 구입했고, 원래 이탈리아로 산을 넘어가는 계획이었지만 무릎 상황이 좋지 않아 Innsbruck을 거쳐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나의 알프스 횡단 일주일 여정은 마침내 끝났다. 독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혼자 시작한 이 모험은, 가는 길에 만난 많은 동반자들과의 교류로 풍부해졌다.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산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 여정은 나에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도전을 통한 성취감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결국 나는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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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의 고난과 알프스 횡단 결심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제가 알프스를 횡단한 특별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야기의 시작은 꽤나 흥미롭답니다. 독일에서 독일어 시험에 합격한 후, ‘이제 독일어 공부는 끝!’이라며 기분 좋게 학교 생활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보니, 독일어 C1 수준이란 게 실제로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죠. 교수님들의 말은 물론, 칠판의 글씨조차 알아보기 어려웠어요. 다행히 과동기들과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 게 큰 도움이 되었죠. 이 이야기는 나중에 ‘독일 이야기’ 편에서 더 자세히 하기로 해요.
그렇게 유학 생활에서 처음으로 큰 갈림길에 섰어요. 언어도 힘들고 환경도 낯설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고 있었죠. ‘이대로 그만두는 게 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만약 그만두면 예전부터 꿈꿔왔던 알프스 횡단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알프스 횡단을 결심했답니다. 저렴한 장비를 구입하고, 주변에서 필요한 것들을 빌려서 가미쉬 파텐키르헨(Garmisch Partenkirchen)으로 떠났어요.
마법 같은 자연: 파르트나흐 클람의 매혹
다음 날 새벽에 배낭을 메고 파르트나흐 클람 (partnachklamm) 입구로 향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죠. 파르트나흐 클람은 예전에 빙하가 녹아서 생긴 물이 파르트나흐 강을 통해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곳이에요. 길이가 약 700미터, 깊이는 80미터에 달하고, 다리와 터널이 협곡을 따라 설치되어 있어요. 정말 매혹적인 경관이에요!
동굴속을 걸어가는 느낌
Reintalangerhütte
그렇게 혼자 알프스 등반을 시작했는데, 아름다운 경치에 정신이 팔려 길을 읽어 한 2km 정도 잘못 갔답니다 🫠 그뒤로 길을 모르면 물어보며 13km정도를 걸으니 해발 1369m 에 위치해있는 Reintalangerhütte라는 산악 휴양소에 도착했죠. 아름다운 강가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Reintalangerhütte에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쉬어가는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다음 여정의 길이 상당히 험난해지고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이죠. 이 휴양소는 그런 여정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완벽한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길이 얼마나 도전적일 수 있는지, 사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정상을 향하여: Knorrhuette에서의 밤
Knorrhuette에서 보낸 하루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식당에서는 제가 유일한 아시안이었는데, 높은 산에서의 식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베를린에서 온 친절한 학생 두 명과 함께 앞으로의 등산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다음 날 같은 길을 걷기로 결정했죠. 그곳에서 만난 독일 사람들은 정말 대단했어요. 험난한 길을 걸은 후에도 밤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는 마치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것처럼 걸어가더라고요.
그리고 여러분, Knorrhütte예약하는 건 꼭 기억하세요! 주크슈피체(Zugspitze) 산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인기가 많기 때문에, 자리가 없으면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거든요.
여행 중에 아쉬웠던 점은, Reintalangerhütte에서 Knorrhütte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 여성분이에요. 그분이 산을 오르다가 다리를 다치신 것 같았는데, 혼자서 힘겹게 걸어가시는 걸 보고도 도와드리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이렇게 저의 알프스 횡단 여정 첫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더 많은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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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포토
오늘은 블로그 정리하다가 최근에 체험해본 아마존의 여러 서비스 중 하나인 아마존 포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저는 독일에서 아마존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고,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에요.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면,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 빠른 무료 배송을 받을 수 있고, 아마존 리딩을 통해 다양한 독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요. 또, 아마존 비디오를 통해 영화, 시리즈,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데, 2024년 2월부터는 Amazon Freevee로 바뀌어서 광고 없이 보려면 별도 신청이 필요해요. 아마존 프라임 뮤직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별로…. 아마존이 트위치를 소유하고 있어서, 트위치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아마존 프라임으로 한 달에 한 번 무료 구독이 가능하다는 점도 있어요.
최근에 알게 된 아마존 서비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Amazon photos 예요. 프라임 회원이면 추가 요금 없이 무제한으로 사진을 저장할 수 있고, 비디오는 최대 5GB까지 저장할 수 있어요. 사진이나 앨범을 친구나 가족과 공유할 수도 있고, 사진을 자동으로 백업하는 옵션도 있어요.
아마존 포토를 사용하면서 제일 놀란 건 테마별로 자동 정리 기능이에요. 모든 사진을 올리기만 해도 년도, 장소, 사물(예를 들면 꽃, 다리, 도로 등)로 자동으로 분류된답니다.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서비스가 사진 속 사람 얼굴을 인식해서 사람별로 사진을 정리해주는 건 정말 신기하죠.
해외에서는 아마존이 많은 부분에 사용되지만, 한국에서는 AWS(아마존 웹 서비스) 외에 이러한 서비스들이 많이 사용되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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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
제 버킷리스트에 ‘호주 방문하기, 멜번에서 친척 만나기’라는 꿈이 있어요. 그 꿈과 얽힌 곳이 바로 감천문화마을입니다. 10년 전, 그리워하던 사촌 누나와 사촌 형과의 소중한 추억이 서린 곳이죠. 당시 부산 자갈치역 3번 출구에서 87번 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감천고개로 향했습니다.
호주에서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형과 누나 덕분에, 부산에서 자랐으면서도 처음으로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6.25 한국전쟁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된 곳으로, 한국의 마추픽추 혹은 산토리니라 불리는 매력적인 장소예요. 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건축물과 벽화, 그리고 당시의 역사와 예술을 체험하는 것은 저에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에 가게 된다면 그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 감천문화마을을 다시 찾고 싶어요. 어릴 적 호주로 이민 간 형과 누나는 10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국에 돌아왔는지 상상조차 못 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멜번에서 그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모두 많이 변했겠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그리움을 안고 또 하루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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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오늘, 저는 제 이전 포스팅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저에게 깊은 영향을 준 하야마 아라리의 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실제로 주인공이 겪은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공감과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글자 크기도 적당하고 총 234 페이지의 얇은 책이라서, 부담 없이 언제 어디서나 펼쳐 읽을 수 있죠. 이 책은 마음에 깊이 남아, 10년 전 한국에서 처음 읽었던 그때의 감동을 최근 독일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책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혼자서 쓸쓸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자신에게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언하고, 그 마지막 시간 동안 꼭 이루고 싶었던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실화랍니다.
이 책은 특히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방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 이 책은 당신에게 새로운 관점과 용기를 선물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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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저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야기를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부유하지 못 환경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간식을 즐길 때 종종 그저 바라만 보거나 가끔 한입만 얻어먹곤 했습니다. 그 당시 돈을 찾기 위해 철봉 밑 모래사장을 파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100원이나 500원을 주워 학교 앞에서 만두를 사 먹곤 했죠.
중학교 때는 참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에 열중할 때, 저는 밖에서 뛰어다니며 벨을 누르고 도망치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주말마다 PC방에 가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죠. 성적은 그저 그랬고, 고등학교를 올라가야 할 때 인문계와 기계공고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거의 꼴찌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쁜 선생을 만났습니다. 한 번은 등교가 늦었다고 손지검까지 당했죠.
3학년 때는 화학을 전공 담임 선생님을 만났지만, 저는 여전히 지구과학에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지구과학 심화 과목은 가르치지 않았지만, 저는 혼자서 공부하며 전국 모의고사시험을 보면 항상 전국 10% 안에드는 높은성적을 받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제가 화학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셨지만, 저의 지구과학에 대한 열정을 보고 뿌듯해하셨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에서 꼴찌를 하던 저는, 3학년 때는 반에서 15등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수능에서는 역시 지구과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하던 지질학과에 갈 수 없게 되자, 부모님의 권유로 실내건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학점이 낮았지만, 두 번째 학기에는 조금 더 노력하여 성적을 개선했습니다.
이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 경험이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군대
10년이 지난 지금도, 군대에 입대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 생생합니다. 이모와 어머니가 같이 마중나와 보충소 앞에서 마지막으로 부대찌개를 먹고, 콜라를 원샷하고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저는 306 보충소로 입대했습니다.
제가 배정받은 곳은 바로 악명 높은 백골부대였습니다. 생활관 동료들은 백골이라는 경례를 하며, 앞으로 힘들 것이라고 반 놀림 반 진심으로 인사했습니다.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백골부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해골 표지판들은 정말로 살벌했습니다.
백골부대 훈련소에서는 힘든 기초 훈련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총을 쏴보고, 3km 달리기를 하고, 눈이 오는 가운데 텐트를 치며 야영도 했습니다. 저는 어려운 청소년 시절을 보낸 탓에 생존 본능이 몸에 배어있었나 봅니다. 훈련교관이 아무리 힘들게 굴려도, 저는 더 독하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이왕 힘든곳에 온 거 끝까지 가자. 더 독하게 해서 백골부대 수색대대에 들어가자.’
훈련병으로서의 생활 동안, 제 첫 3km 달리기 기록은 평범한 18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훈련병 생활이 끝날 무렵, 기록은 놀랍게도 12분 30초로 단축되었습니다. 이는 특급 체력의 기준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죠. 훈련이 끝나갈 즈음, 각 부대에서 찾아오는 간부들 중 한 조교간부가 저를 조교로 선발하려 했습니다. 그는 제 눈빛이 마음에 든다며 조교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고한 마음으로 “저는 수색대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조교는 웃으며 “거기 가면 후회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결심이 확고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실제로 수색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수색대대에서는 체력이 특급이 아니라면 사람취급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등병 때부터 12분 30초의 달리기 기록과 18발 사격의 특급전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다른 동기들보다 빨리 진급했습니다.
DMZ 작전에 투입되기 전까지, 저는 많은 추가 훈련을 받았고 여러 총기를 다뤘습니다. 수색 작전을 위해서는 낮에는 팀 전술훈련과 사격, 밤에는 야간투시경을 장착하고 매복 작전을 위한 야간 사격 훈련을 했습니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사격 훈련을 진행했죠 (그래서 지금 이명이…).
수색대대의 일과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일과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휴식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전이 있으면 언제든지 임무에 투입되어야 했으며, 일과 후에도 체력 단련은 계속되었습니다. 군장을 메고 산악 구보를 하는 동안 새로 들어온 신병들 중에는 토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 조교가 “거기 가면 후회할텐데”라고 말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수색대대에서의 힘든 군 생활 속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만든 한계와 편안함을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죠. 수색대대에서는 말년이라고 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작전에서는 계급이 높다고 해서 예외가 없었습니다. 특히 작전에서 선임분대장의 역할은 막중했습니다. 팀원들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전역할 때쯤, 저의 3km 달리기 기록은 놀랍게도 10분 30초까지 개선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얻은 또 하나의 습관은 책 읽기입니다. ‘멈추지마 꿈부터 다시 써봐’라는 김수영 작가님의 책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 책은 제 인생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군대 안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전역 후: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한 여정
군대에서 품었던 해외 여행의 꿈을 전역 후에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을 여행하면서, 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이 여행은 저에게 과거를 떠나 독일 유학이라는 새로운 모험에 도전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언어 장벽, 그리고 제 능력에 대한 의문들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도중,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때, 하야마 아마리씨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을 읽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1년 동안 최선을 다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이 꿈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네가?”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갔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의심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남은 기간 동안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점차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학교 생활을 최선을 다해 마치며, 독일어 공부에도 몰두했습니다. 또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제 공부 방식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습니다. 반복과 지속을 통해, 뇌가 이해할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나 자신과의 싸움과 같았습니다. 결국, 책 한 권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었고, 그 결과로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공인자격증인 실내건축 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노력의 결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초기 정착지원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필요한 자금을 조금씩 모아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에 사시는 한 고객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은 제 독일행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저는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독일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제가 꿈꿔온 변화의 시작이자, 새로운 모험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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